안동시 성곡동 위텃골에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 만들어놓은 야외 세트장이 있다.
이 골짜기에 살던 사람들의 집과 토지를 수용하여 그 자리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짓고 저자거리도 꾸며
촬영장을 만들었다. 거기서 태조 왕건을 찍었기 때문에 안동사람들은 그곳을 왕건 촬영장 이라고도
부르고 안동댐에 있다 하여 안동댐 촬영장이라고도 한다.
<09. 6. 6>
어찌되었건 1999년부터 3년 공사로 사람이 살던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을 지었다.
안동 발전을 위하여(?) 집과 전답을 내놓고 떠난 위텃골 사람들의 애환을 축대 밑에 묻고,
눈요깃거리를 위해 눈속임으로 지어놓은 그야말로 세트장이다.
그 세트장 언저리 산기슭에는 수용되고 남은 작은 땅되기에 의지하여 예전대로 살아보려던
어떤네의 집이 세트장을 바라보며 흉물스레 남아있다.
<09. 6. 6>
시멘트로 발라놓은 마당가에는 돌나물 꽃이 제철이고, 횅하게 뚫린 안방에는 호마이카 장롱이
벽을 지고 있다.
그러나 이집은 빈집이 아니다.
<09. 6. 6>
위채에는 회칠한 축담위에 버티고 앉아 옛 주인보다 더 살갑게 기둥뿌리를 지키고 있는 늙은 씀바귀와
어린 애기똥풀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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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채에는 문지방에 기대서서 텅빈 마구간을 지키는 큰 애기똥풀이 노란 꽃을 피워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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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 아랫방은 동네아이들 공부방으로 쓰였던가 보다. 그 방에는 박명숙도 있고 김세영도 있고 또
박신아, 김지수, 김기용, 박진아도 있었던가 보다. 그들은 자율적 운영을 위해 주번도 두었다.
떠드는 학생도 있고 숙제 안한 학생도 있었던 모양이다.
기둥에 걸린 작은 칠판이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09. 6. 6>
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관료적 시각과 구호행정은 우리의 삶과 의식 어디에까지 파고든 것일까?
개발 변두리, 빈집 벽에 남은 낡은 표어가 공허하다.
<09. 6. 6>
무너진 벽 위에 온전하게 걸려있는 안동권씨대종회의 2002년도 달력으로 보아 이 집 사람들은 아마
2001년 겨울쯤에 떠낫고, 어른들 중에 안동권씨도 있었던 것 같다.
<09. 6. 6>
세면장 벽에 걸린 칫솔 꽂이에는 칫솔 다섯 개가 몸을 맞대고 꽂혀 있다.
어른 칫솔 두 개, 아이들 칫솔 세 개, 흰색 보라색 빨간색 노란색 자주색.
어른 둘 아이 셋 다섯 식구가 서로를 보듬으며 오순도순 살고지고.
<09. 6. 6>
다락, 마당, 창, 부엌, 이 집 안방 벽에 설치된 네 개의 전기스위치에 붙어있는 이름표다.
이 집 주인은 무척 깔끔했나 보다.
그런데 안방 스위치는?
< 09. 6.6>
안동댐에 왔던 젊은 외지인 커플이 위텃골 빈집에 들려 안방 벽에 흔적을 남겼다.
안동을 고이 간직하고 간다고. 지난 2003년 6월 28일에.
그네가 고이 간직한 안동은 어떤 모습일까?
<09. 6. 6>
2009년 6월 6일 한낮, 반쯤 속을 비운 비료포대 하나가 방문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09. 6. 6>
그날 촬영장에서 만난 관리책임자는 철거해도 쓸 것 없는 낡은 세트장의 처리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 사람은 가도 흔적은 남는다. - 彷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