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도 얼추 지나간 말복 다음날.
닷새 마다 열리는 구담장은 막바지 더위 탓인지 한산하다.
시장으로 이어진 골목에는 반듯하게 단장한 술집이며 다방들이 마치 배우를 기다리는 세트장처럼
느껴지고, 시장 안 어물전 잡화전도 한가롭기는 매 한 가지다.
유독 채소씨앗을 파는 난전, 예초기를 수리하는 철물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무더위 속에서도 어느새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물 맞춰 김장채소를 파종하고, 여가 내어 산소에 벌초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즐비하게 늘어선 접마늘 앞에서 값을 저울질 하는 아낙의 머릿속엔 벌써 김장걱정이 맴돌고 있다.
안동의 서쪽 귀퉁이, 예천군과 경계를 이루는 구담의 오일장. 시장 가건물에 펼쳐진 옷전에서
의성 쌍호리에 사는 늙은 올케와 풍천 신성리로 시집간 시누이가 만났다.
두 마을 모두 낙동강을 건너서 몇 구비를 돌아가야 있는 산촌이다.
‘시어머니 시집살이 보다 시누이 시집살이가 더 맵다’는 말은 옛말이다.
이제 남의 집 며느리로 늙어가며 동병상련하는 시누이는 고운 몸빼바지 하나를 사서 굳이 사양하는 올케의 장바구니에 슬그머니 넣어준다.
장터 들머리에는 낯내기를 꺼리는 박병춘씨 부부의 좌판이 있다. 고무줄, 사카린으로 시작한 외장길 50년. 일흔 다섯 살 박씨는 무 배추 등 가을채소씨앗과 인근 산에서 채취한 오가피 황기 엄나무 등 약재로 장을
보고, 부인 김씨는 빨래비누 세제 고무장갑 성냥 수세미 좀약 모기약 등 생필품을 펼쳐 놓은 좌판 옆에 점심 식사를 위한 간이 취사도구를 준비했다.
결혼생활 43년, 부부가 같이 장마당을 밟은 세월이기도 하다, 이제 자식들 모두 성가시켜 내보내고 아무런 걱정 없이 소일삼아 다니지만 부인 김씨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다.
“남들처럼 집에 들어앉아서 벌어다주는 돈 쓰고 살아봤으면...”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은 작은 양은냄비만큼이나 소박한 김씨의 꿈과, 시장바닥 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저들의 로맨스가 아름답다.
2010, 8, 14. - 彷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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